Diary of Teacher Holy (11) 썸네일형 리스트형 진로 나를 잘 따르는 학생과 진로에 대해 얘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학생이 대학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배우고 싶은 게 없는지, 되고 싶은 게 없는지 물었더니 그런 건 아니고 동생이 있어서 자기까지 대학 가기가 좀 그렇다고 했다. 혹시 부모님께서 대학 등록금을 벌써 걱정하시냐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 했다. 대학 간다고 뭐 인생 성공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소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것도 아니면서 부모님이 아직 걱정하지 않는 금전적인 이유로 먼저 포기하려는 학생이 너무 안타까워서, 대학 가면 여러 가지 장학금도 많고, 알바도 할 수 있으니 돈은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예전에 내가 어릴 때는 어른들이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 단어 시험 한 반에는 각기 다른 학생들이 있다. 그중에 이 학생은 영어는 물론 어떤 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진로도 정하지 않았다. 무조건 공부해라 잔소리한다고 들을 것 같지는 않아서 별말을 하지 않다가 같이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얘기를 많이 하고 친해졌다. 항상 멍 때리던 학생이 어느 날 본인이 본 영화 얘기를 수업 시간에 해주더니, 이번에는 단어 시험 범위를 알아가기도 했다. 기대하지 말라는데 나는 기대가 된다. 야자 감독 요즘에 뉴스에 안 좋은 얘기들만 가득하고, 안 좋은 댓글들만 달린다. 그래서 내가 겪은 예쁜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이 학교에 처음 와서 첫 야자 감독을 하던 날의 이야기다. 야자를 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모두 독서실을 나갔는데, 내가 가르치지 않는 3학년 여학생이 빈 독서실로 들어왔다. 학생은 나한테 젤리 하나를 주면서 "저희 때문에 늦게까지 감독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세요." 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 그렇게 따뜻하고 성숙한 멘트를 선생님에게 날려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예쁜 말을 하는 학생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예민한 때에 동생들이 조금 시끄럽게 해도 짜증내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이 괜히 미안했는데, 이렇게 예쁜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 고3 학생들이 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이루어진 사랑 나는 처음에 자기소개를 할 때 첫사랑 얘기 등등 개인적인 얘기를 묻지 말라고 한다. 딱히 못할 이유는 없지만, 쓸 데 없이 수업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미리 얘기를 해두는 편이다. 하루는 한 학생이 여태까지 살면서 사랑을 총 몇 번 해봤냐는 질문을 했다. 내가 대답을 빨리 못하니까 '이루어진 사랑'만 알려달라고 했다. '이루어졌다'라는 기준이 뭐냐 되물으니 학생들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귄' 것이 곧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라 했다가, 그러다 헤어지면 사랑이 이루어진 게 아니냐 하니 이제는 또 결혼을 해야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혼을 하면- 또 사랑이 이루어진 게 아니냐 하니, 결혼을 해서 잘 살다가 죽어야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따지.. 갈등 작년에 계신 선생님은 수행평가 점수를 굉장히 후하게 주셨다. 그전 수행평가에서는 대부분의 학생이 100점 만점을 받았고, 열심히 수행평가를 준비한 학생과, 준비된 수행평가를 떠먹기만 한 학생의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아서 이 부분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분명히 학기 초에 수행평가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였고,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열심히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대신 누구나 열심히 한다면 모두 높은 수행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얘기까지 하였다. 회색 거미 학생은 워낙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시험은 신경 쓰지 않고, 그나마 떠먹여주는 수행평가 점수를 받아서 꽤 그럴듯한 점수를 유지하던 학생이었는데 내가 설명할 때는 와닿지 않았는지 별말을 하지 .. 신조어 2 나도 어디 가서 되게 상냥하고 공손한 말투를 쓰는 사람은 아닌데, 남학생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게 싸우는 건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반 학생들이 진회색거미 학생에게 왜 어젯 밤 인터넷 게임에 참여를 하지 않았냐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 것 아니냐며 비꼬는 것처럼 말을 했고, 진회색거미 학생은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를 보느라 깜빡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해서 이번에 반 1등을 하겠다'고 말하자 진회색거미 학생 그런 게 아니라며 어쩔 줄 몰라 했고,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개입을 하고 싶었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왜 공부를 했다고 비꼬고 놀리냐고 했더니 학생들이 놀린 게 아니라 진짜 부러워서 .. 신조어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 불량학생들이 수학 시간에 몰래 쪽지를 주고받다 선생님에게 걸렸다. 선생님은 두 학생들을 일으켜 세워 혼을 내시며 쪽지를 뺏어 읽으셨다. "... 펜을 뽀렸어? 뽀렸어가 뭐야?" 선생님이 궁금해하셨지만, 불량학생들이 두려웠던 우리들은 아무도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릴 수 없었다. 뽀린다는 뜻이 뭔지 모르는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집중하라고 하시고 잔소리를 끝내셨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시자 두 불량학생들이 웃으며 '훔쳤다고 썼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우리끼리 신조어를 쓰던 세대였는데, 이제는 어린 세대들이 쓰는 신조어를 신기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억까'라는 단어를 직접 들으니 신선했다. 장난 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요즘에 교권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그 사실을 까먹을 만큼 학생들이 순하고 착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은 어른들의 잔소리를 귀찮아하고 어른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체를 싫어할 법도 한데 어떤 학생은 월요일이 되면 나를 쫓아다니며 자신이 주말에 뭘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말을 해준다. 나는 이야깃거리가 잔뜩 있어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의 그 학생을 복도에서 마주치면 괜히 귀찮은 척을 하며 장난을 치지만, 그 학생은 나의 그런 표정을 오히려 재미있어하며 내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고,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 하루는 복도 저 멀리서 나를 쫓아오더니 "저 지난 주말에 뭐 했는지 아세요?"라고 묻길래 장난치려고 "난 당연히 모르지."라고 답을 했다. 당황한 그 학생은 잠시 머뭇거리.. 판단 얼마 전 선생님들과 교권이 얼마나 실추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만 뭐라 하면 바로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오고, 심한 경우 선생님의 자격을 운운하며 사람을 판단하고 담임을 바꿔달라는 요구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한 선생님이 '누가 누구를 판단하냐'며,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선생님이 된 사람들을 누가 판단하냐' 따졌고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학부모가 교사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단지 교사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인간이라면 누가 누구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저 논리라면, 더 어려운 시험을 본 사람들은 교사를 함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로 여겨졌고, 또 시험을 보지 않은 사람을 하찮게 여겨도 된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말에는 어.. Prologue 2 당시 나는 임용 시험 재수를 준비하면서 짧은 기간제나 시간 강사로 학원비를 벌며 생활하고 있었고, 나에게는 임용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중학교 교사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미래가 보장된 공무원이 되어 자신감이 넘쳤고, 매일 선을 보고 직장인 동호회 활동을 하며 짝을 찾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그런 친구의 모습을 나 자신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친구는 매일 정시 퇴근을 한 후 나에게 놀자고 졸랐고,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자주 약속을 거절했다. 친구는 나에게 '왜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해서 나와 놀아주지 않느냐'라며 투정을 부렸고 나는 그 말에 상처를 받았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직장인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 남자는 내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며 어느 날은 술을 마.. 이전 1 2 다음